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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탐구

강의1. 드러커 생애

by 문정엽/드러커연구가 2016.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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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드러커, 그는 누구인가

2016.11.25

 




   피터드러커 교수 개인과 그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

  그가 르네상스적 지식인이 된 배경을 살펴본다.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자기관리로 생전과 사후를 통틀어 세계 지식인들에게 지속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피터 드러커와 가족, 유년기와 오스트리아, 청년기의 탐색적 삶, 장년기의 인생전환,  노년기의 자기관리

 

예측과 예언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미래학자

 

• 드러커는 1989년 《새로운 현실》(New Reality)에서 소연방의 해체를 예언했다. 이 예측을 정확하게 들어맞았지만, 드러커는 이미 1939년에 저술한 《경제인의 종말》The End of Economic Man)에서 히틀러와 스탈린 간에 체결된 독소 동맹과 나치에 의한 전면적인 유대인 탄압 정책을 예측했던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다.  

• 드러커 박사는 미래사회의 변화에 대해 많은 저서를 발간했다: 《단절의 시대》(1969), 《새로운 현실》(1989),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3), 《미래의 결단》(1995), 《21세기 지식경영》(1999) 《Next Society》(2001)

 피터 드러커의 수많은 논문들과 심원한 통찰력은 1930년대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기원에 관한 선견력 있는 논문부터 시작하는데, 그는 현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 가장 의미심장하고도 일관성 있는 관점을 제공하는 기고가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스며든 ‘효과적인 경영’(effective management) 은 자유세계를 지탱케 하고, 독재자와 전체주의가 다시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단 하나의 대안인데, '효과적인 경영'의 확산이라는 점에서 피터 드러커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

《Built to Last》, 《Good to Great》의 공저자 짐 콜린스(Jim Collins)


드러커 박사와의 첫 만남, 회고(고 이재규 박사)

 

• 드러커 교수의 생활철학: “Slow down and speed up” (“마음은 느긋하게 그리고 몸은 빨리 움직이고”)

•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목표의식

• 다양한 분야의 경험과 학문연구: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철학, 경영학 교수, 저널리스트, 경영 평론가, 경영 컨설턴트, 소설가 등

사람은 호기심을 잃어버릴 때 늙는다.

인간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새로운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드러커 박사가 주장한 MBO: Management by Objectives & Self Controls의 기본이념)

언제 은퇴하실 생각이십니까? When do you plan to retire?

나는 은퇴할 생각이 없다네. I've no desire to retire.”

(드러커 박사와의 만남에서. 이재규 박사의 회고)


빈의 어린 시절

 

• 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 출생

• 가정환경 및 교육 - 부친 아돌프는 오스트리아의 재무성 장관을 지낸 고위 공직자였고, 모친 캐롤라인은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의학을 공부한 여성으로서, 프로이트의 제자였음. 좋은 가정환경에서 고전  및 예술을 포함하여 전인적 교육을 받았으며, 부친의 친구였던 조지프 슘페터, 폰 미제스, 프리드리 하 이데거 등과 교류

• 드러커의 부모는 경제학자, 정치학자, 음악가, 작가, 그리고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살롱 모임을 주기적으로 열었다(Monday Salon). 어린 드러커는 이들과 대화하면서 지적 영감을 받았다. 이들 중에는 조제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 가 있었는데, 그는 드러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드러커는 “그 모임은 실제로 나를 가르쳤지요”라고 말했다.

• 15세 최초의 논문 발표: 파나마 운하가 세계 무역에 미치는 영향

• 드러커는 20세기 초 격변기에 소년기를 보낸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국의 쇠퇴와 함께 유럽 전역에 걸친 대립과 갈등, 전체주의(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발흥, 1차 대전, 경기불황과 공황을 겪고 목격한다.


독일에서의 경험, 그리고 독일 탈출

 

• 고교(김나지움) 졸업 후 독립: 함부르크 무역회사 수습사원으로 일하면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공부했고, 국제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일간지였던 프랑크푸르트 제너럴 안자이거(Frankfurter General-Anzeiger) 지에서 외교와 경제를 담당하는 선임 편집자로 일했다.

• 베르디와 피디아스의 교훈을 얻는다: 완벽(perfect)함의 추구

-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가 80세에 작곡한 오페라 팔스타프 (Falstaff)를 알게 되어 깊은 감동을 받는다.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유명인이 된 사람이 그리고 그 나이에, 왜 또 오페라를 힘들게 작곡하는가, 그것도 엄청나게 벅찬 주제의 작곡을 하는가?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 했지만, 곡이 끝날 때면 늘 아쉬움이 남았다. 분명 나는 한번 더 도전해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베르디)

드러커는 저서를 통해 피디아스(그리스 조각가)의 일화를 자주 말했다. 

피디아스는 파르테논 신전을 설계한 건축가로 설계 대금을 반만 지급하겠다는 회계원의 주장에(땅에서 보면 앞면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대해 “ 하늘의 신이 보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


런던 생활

 

• 나치 등장과 독일 탈출: 드러커 교수는 나치를 통해 전체주의 문제점과 종말을 예상했다.

• 프랑크푸르트 대학: 국제법학박사학위 취득. 첫 번째 저서 Friedrich Julius Stahl, Konservative    Staatslehre und Geschichtliche Entwicklung 발간

• 독일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슈탈(Friedrich Julius Stahl)에 관한 에세이와 ‘독일에서의 유대인   문제(The Jewish Question in Germany)’라는 두 개의 에세이기 나치에 의해서 판금/소각된 뒤에 독일을 떠났다.

• 런던의 머천트 뱅크 애널리스트로 근무, 머천트 뱅크 사장과의 일화

나는 자네가 보험회사의 증권분석사로서는 일을 썩 잘한 것을 알고 있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자네가 증권분석업무를 계속하길 바랐다면 우리는 자네가 있던 그 자리에 있도록 했겠지. 자네는 지금 머천트 뱅크 파트너들의 수석 비서인데도 증권 분석업무를 계속하고 있잖아. ‘지금’ 자네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다시 말해 자네의 ‘새로운’ 직무에서 효과적인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만 할까를 생각해보게나”

• 케인스와 슘페터: 20세기 경제학의 양대 거장 영향을 통해 사안의 양면성을 보는 혜안을 터득함.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 국가의 역할 강조

-슘페터 (Schumpeter, Joseph Alois 1883~1950): 개인의 역할 강조, 기업가 정신

• 캠브리지 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강의를 들음:

나는 케인즈와 강의실에 있던 모든 명석한 학생들이 상품의 행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데 반해 나는 인간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지요.


미국 동부와 뉴욕


• 1934년 도리스(Doris Schmitz)와 결혼. 1937년 미국으로 이주.

• 특파원과 대학 강사로 일함: 파이낸셜 타임스 (the Financial Times)를 포함해서 여러 영국 신문을 위한 통신원으로 일함. 1939년 뉴욕 교외 브룽크스 빌의 사라 로렌스 여자대학(지금은 Sarah Lawrence College)에 서 경제학과 통계학 강의' 1942년 버몬트의 베닝턴 대학(Bennington College)에서 정치이론 · 미국 정치 ·  미국사 · 경제사 · 철학 · 종교에 대해 강의함.

• 저술 - 산업인의 미래 (The Future of Industrial Man, John Day, 1942), 경제인의 종말 (The End of Economic, John Day, 1939)

• 경제인 및 석학들과의 만남 – GM CEO 알프레드 슬로안 2세, 타임지 창업자 헨리 루스와의 만남,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한과의 만남, 건축학자 버크민스터 풀러와의 만남

• 기업 컨설팅(GM, GE, IBM 등): GM을 컨설팅하고 기념비적 저작인 <기업의 개념, 1946> 출간.


교육과 저술가의 삶

 

• 뉴욕대학 (1950-71): 1950 년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 (Graduate School of Business, New  York University) 최초의 경영학 교수

당시 경영학 교수란 타이틀을 지닌 것이나 매니지먼트란 주제로 강의를 한 것이나 모두 세계 최초였다.

• 1971년에 클레어몬트 대학원(Claremont Graduate School )의 마리 랭킨(the Marie Rankin Clarke) 사회과학과 경영학 교수로 부임, 2002년(93세)까지 강의

• 저술활동: 생애 총 39권의 저서를 발간함.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월스트리 저널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함.

  1950년~ 1971년: 

<새로운 사회>, <경영의 실제>, <내일의 이정표>, <단절의 시대>,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등 경영에 관한 개론 또는 개념에 관한 저서 저술, 기업의 개념 (Concept of the Corporation, 1946): 경영학의 바이블

  1971년 이후: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매니지먼트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Practices >,   <자서전 Adventures of a Bystander>, <혼란기의 경영>,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기업가 정신>,   <프런티어의 조건>, <비영리단체의 경영>,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대변화 시대의 경영>, <21세기 지식경영>, <The Essential Drucker>, <넥스트 소사이어티>,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의 다섯 가지 경영원칙>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는 조직을 운영하는 기술과 과학을 통합된 지식의 체계로 조직한 최초의 저작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당시에는 사업을 운영하는 부분적인 측면들-재무나 인사관리 등- 만을 다루는 책들만 있었고, 모든 영역을 함께 다루는 책들은 없었다. “내가 발견한 것이라고는 머리나 근육조직은 고사하고 팔꿈치 같은 신체의 관절 부위를 언급하는 인간 해부에 관한 책들이었다”라고 드러커는 회상했다. 드러커는 <경영의 실제>를 저술하기 시작하면서 “ 나는 학문의 기초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의식했다” 고 언급했다.

• 1973년 드러커의 최고 저작인 <매니지먼트: 과업, 책임, 실무(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Practices) 출간: 이 책은 수 세대를 넘어서 기업 경영자들, 비영리기관의 관리자들, 정부 지도자를 위한 경영지침서가 됨.


도쿄와 서울

 

• 드러커에게 배운 일본

- 세계 2차 대전 후 피폐해진 일본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1959년 이후 매년 드러커 교수를 초빙했다.

- 1993년 10월 25일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일본어판 출판기념에서의 강연 내용

지금 일본은 등대가 없다. 과거 일본은 일억 인구가 다 함께 먹고살자, 그리고 미국을 따라잡자는 2개의 등대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강국이 된 일본은 지금 등대가 없다

(이 강연 전후부터 일본은 거품경제가 꺼지고 깊은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 한국에 대한 관심 - 한국전쟁 이후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의 성과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한국은 내가 30년 이상이나 주장했던, 즉 지식이 현대사회와 현대 경제의 핵심자원이 라는 나의 주된 명제에 부합되는 최고 모범 국가입니다.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랍니까


• 필리글리 신부의 질문이 주는 교훈 - “너희들은 죽은 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느냐?”

• 슘페터의 임종에서 배운 것(드러커의 아버지와 슘페터가 나눈 대화를 함께 들은 드러커의 회고)

 “조지프, 자네는 아직도 자네가 죽은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에 대해 말하고 다니는가? 

“...... 나는 대여섯 명의 우수한 학생을 일류 경제학자로 키운 교수로서 기억되길 바란 다네.”

• 드러커가 얻은 교훈:

  첫째,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지 질문해야 한다.

  둘째, 사람은 늙어 가면서 그 대답을 바꾸어야만 한다. 대답은 사람이 성숙해가면서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하나는 인간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 사실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도와준 사람, 피터 드러커

 

• 가장 중요한 기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 말년이 다가오는 때에, 그가 가장 중요한 기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거의 60여 년 전에 일찍부터 경영은 조직들의 사회에서 조직의 기본적인 기관이고 기능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그리고 경영이란 “사업관리”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든 조직을 위한 통치기관이라는 점을 인식했다는 것. 경영학을 자체의 내용을 가진 학문으로서 연구할 수 있는 체계를 세웠다는 것. 

경영학을 사람과 권한, 가치, 구조와 구성요소에, 특히 무엇보다도 책임에 초점을 둔 것, 그럼으로써 경영학을 진정한 인문학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 드러커 교수님,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Business 2.0(2001); What do you want to be remembered for?

박사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Drucker; That I helped a few people accomplish their goals.

나는 다른 사람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이재규 박사와의 대담에서  

Jklee (1999): When do you plan to retire?

언제 은퇴하실 생각이십니까?

Drucker: I've no desire to retire.

나는 은퇴할 생각이 없다네.

Jklee (2002): Are you the oldest professor teaching in the States?

미국에서는 박사님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가장 나이가 많은 교수님이세요?

Drucker: No, several professors over 90 years, Dr. Pound taught until 97.

그렇지 않네. 여러 교수가 90세가 넘어서까지 가르쳤네. 파운드 박사는 97세까지 강의를 했어.

• 지식사회의 지식근로자: 지식사회가 된 지금 지식근로자가 “나는 무엇에 기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출발한다면 그것은 자유를 제공한다. 그것이 자유를 제공하는 이유는, 그것이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본문은 국내 최고의 피터 드러커 연구가인 고 이재규 박사가 했던 강의와 이 박사와 작가와의 대담을 기초로 재구성한 글이다. 작가는 고 이재규 박사와 드러커 연구를 통해 만났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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