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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드러커(Reading Drucker)

DRUCKER WEEKLY 09 어떠한 리더가 필요할까

by 문정엽/드러커연구가 2017.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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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CKER WEEKLY

피터 드러커로 경영과 세상 읽기

009/ 2017

 

 어떤 리더가 필요할까

 

 



DRUCKER WEEKLY 009_2017_어떠한 리더가 필요할까.pdf



처칠, 리더의 표본

처칠이 선물한 것은 도덕적 권위, 가치에 대한 신념, 그리고 이성적 행동의 정당함에 대한 믿음이었다.

 

1930년대의 마지막 진실은, 리더십의 전적인 부재였다("경제인의 종말"에서 분명하게 서술했다). 정치무대는 캐릭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유례가 없이, 너무나도 많은 정치가들이 있었고, 그들은 열정적으로 일했다. 이들 중에 꽤 많은 사람들은 점잖았고, 어떤 사람들은 유능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쌍둥이 어둠의 왕자들-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스탈린-을 제외하고, 이들 모두가 애석하게도 시시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평범함 조차도 그것이 없는 것이 눈에 띌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처칠이 있었다".

확실히, 전체주의라는 사악한 힘에 대항하는 유럽의 리더로서 처칠의 등장은 절대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처칠 지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명의 돌쩌귀" 였다.

 

오늘날의 리더들은 실제로 처칠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됭케르크(Dunkirk)*에서의 퇴각과 프랑스의 함락 이후에, 처칠이 모든 자유세계시민의 리더로서 등장하기 전까지는, 히틀러는 분명한 태도로 절대적 확신을 갖고 행동했었다. 처칠의 등장 이후로, 히틀러는 타이밍에 대한 감각과 모든 적들의 작은 움직임이라도 예측할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해 갔다. 1930년대 영민한 계산꾼은 1940년대에는 야만스럽고, 통제할 수 없는 투기꾼이 되어버렸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65년이 지난 오늘날에, (만일) 처칠이 없었다면 미국은 나치가 유럽을 지배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처칠이 제공한 것은 유럽이 진실로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도덕적 권위, 가치에 대한 신념, 그리고 이성적 행동의 정당함에 대한 믿음    

 

 (피터 드러커, A Functioning Society)

 

[네이버 지식백과] 됭케르크 철수 [Withdrawal of Dunkerque, ─撤收] (두산백과)

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0 5 26일부터 6 4일까지 유럽 파견 영국군 22 6,000명과 프랑스·벨기에 연합군 11 2,000명을 프랑스 북부해안에서 영국 본토로 최소의 희생을 내고 철수를 감행하였던 작전 

 


2017 3 10

 

2017 3 10일은 한국 사회에 하나의 변곡점을 만든 날로 기억되리라 생각합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 파면을 결정한 날입니다. 제게 이 날은 민주주의를 기본 신념으로 하는 사회체제에서 국민을 대리하는 모든 공직자는 국민의 결정에 의해 그 직이 좌우된다는 정당한 원칙을 확인한 날입니다. 선택하는 권리는 철회하는 권리와 동전의 양면이니까요. 다만, 1948년을 공화국(republic)이 성립된 해로 간주하면 70년이 되는 2017년에 이러한 원칙을 확인한 것이 빠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잘 안 서네요..

물론 선택의 올바름에 대한 이견은 가능합니다. 다수의 국민이 선택했다는 것 만으로 그 선택을 올바르다고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1930년대를 살았던 독일 국민들의 대다수는 희대의 독재자였던 히틀러를 선거라는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지도자로 선택하고 환호했습니다. 이 사실을 증거로 들면서 대의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중은 올바른 선택을 할만한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며, 소수의 훈련된 엘리트들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를 고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생각은 길게 보면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때때로 잘못될 수 있음에도 국가를 구성하는 기초인 국민의 선택을 최고이자 최선의 근거로 인정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현재까지는 가장 올바른 체제라 고생 각합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좋은 체제가 아니라, 가장 덜 나쁜 체제이다라는 처칠의 말에도 동의합니다.      

 

대한민국은 맞이해서는 안 되지만, 불가피했던 국가지도자의 위기라는 사태를 일단락 지었습니다. 아닙니다. 사실은 일단락된 것이 아닙니다. 수개월의 혼란 속에서 공개적 이슈는 선출된 공직자를 파면하는 것이었지만 이면에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근거입니다. 과거에 내렸던 선택의 근거가 무엇이었고, 앞으로 지도자를 선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공감과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잘못된 선택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선택할 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근거가 있습니다. 마음속 근거는 개별적이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모아지는 다수의 합의가 시대정신입니다. 이 합의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미래 사회는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를 선택하는 근거는 인공지능처럼 데이터나 경험을 통해 가장 올바른 것을 찾는 것과는 다릅니다. 인간은 실수도 하고 오판도 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의심스럽거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편향된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도자로 선택되는 것은 첨단기술과 대규모 산업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반복되는 일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016년에 도날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나라는 세계를 이끄는 리더이자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국가인 미국이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60일 이내에 지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누구를 선택할 것에 앞서서 어떠한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해야 하는가, 그 선택의 근거와 중심 가치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에는 다음과 같은 키워드가 바쁘게 돌아다닙니다.

 

국민을 통합시키는 지도자, 갈등과 대립을 끝내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지도자.

경제를 살리는 지도자,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적폐를 청산하고 상생하는 나라를 만들 지도자.

남북 분단을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지도자……

 

여러분은 무엇을 근거로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1939년에서 1945

 

처칠을 위대한 리더라고 말한 드러커의 설명은 다소 낯섭니다. 처칠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가 이룩한 업적(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이 아니라 그가 드러내는 가치로 드러커는 위대함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점에 리더십의 진정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칠과 히틀러는 극단적으로 대비됩니다. 히틀러는 전체주의를 상징합니다. 그는 폭력과 차별, 비합리성과 야만을 드러내는 지도자입니다. 반면에 처칠은 자유세계를 대표합니다. 그는 히틀러에 대항한 지도자였고, 결국 자유의 가치, 평화와 공존, 합리성과 인권을 대표한 것입니다.

다른 민주국가의 지도자들도 전체주의에 대항해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는 영국보다 미국의 공이 훨씬 컸습니다.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전쟁을 주도했고, 특히 40여만 명의 젊은이들을 희생한 미국의 공헌이 과소평가될 수는 없습니다. , 2차 대전은 연합국의 승리였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요? 스탈린도 승리의 전과를 가져갔습니다. 일본과 싸우라는 미국의 요구를 회피했던 소련은 영리하게도(?) 독일과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하기 직전에 참전을 선언했고 자국의 큰 희생 없이도 승전국의 전리품을 챙겼습니다.

그럼에도 처칠은 자유세계의 가치를 대표하고 그 자유세계를 지킨 사람으로 평가 받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미 한물간 늙은 정치인에서 자유세계의 가치를 대변하는 영웅이 됩니다. 유럽이 간직해왔던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전체주의라는 악마에 의해 침 식당 할 때, 18세기 이후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뿌리내렸던 프랑스조차도 힘에 굴복할 때, 이 노정객은 영국을 단합시키고 유럽을 한데 뭉치는 지도자로 일했고, 자국우선주의에 빠져 있던 미국이 참전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의 역할은 영국이 가진 힘이 아니라 처칠이 보여 줬던 자유에 대한 신념, 싸우겠다는 용기가 바탕에 있었습니다. 그의 신념과 용기는 영국 국민을 포함해서 자유세계의 시민에게 희망과 믿음을 공유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만약에 처칠이 없었다면 다른 누군가 가 자유세계의 시민들과 지도자들이 주축국(독일-이탈리아-일본)에 대항해서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희망을 주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드러커는 처칠을 통해서 리더가 대표하는 가치의 중요성을 전해줍니다. 리더가 추종자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업적도 중요하지만 리더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올바를 때, 그리고 이 가치를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할 때, 비로소 리더십이 완성된다는 의미가 그 안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떠한 리더가 필요할까

 

리더가 대표하는 가치는 추종자들을 만들고, 사람들은 리더와 함께 그 가치를 위해 행동하고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나갑니다. 가치의 공유는 인간이 모인 조직의 정체성을 만드는 불가결한 요체입니다. 개별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이 조직일 수 있는 것은 명확한 가치가 깊게 공유될 때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국가든 기업이든 모든 조직에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리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곧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과거에는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거나 직책에 부수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리더가 되고 리더십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이러한 리더십은 가능하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지식사회는 개인의 자율적 참여와 공헌에 의해서 운용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리더로 선택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모든 사람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으로서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중의 책임-리더의 책임과 추종자의 책임-을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 바로 2017 3 10일의 교훈입니다. 저는 이 책임은 리더를 선택하는 그 근거, 리더가 대표하는 정신과 가치를 리더와 추종자가 올바르게 분별할 때 비로소 수행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부, 기업, 대학, 병원 등 그것이 무엇이든 한 조직을 이끌고 있는 리더라면 ‘ ‘왜 사람들이 나를 리더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대변하는 가치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내가 부르짖는 가치에 대해 구성원들은 진정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말하는 것과 내가 행동으로드러내는 것은 일치하는가? 혹은 모순되고 있지는 않은가?

-왜 내가 부르짖는 가치가 현장에서는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가?

-나의 가치가 구성원들의 가치와 일치 혹은 정렬되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통, 혁신, 자율, 존중, 개방, 협력...... 가치가 문화로 뿌리내리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올바른 리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무엇이 리더를 선택하는 근거가 되어야 할까?’, 나아가내가 생각하는 이 근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인가?”를 질문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리더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요구하는 과제와 미래를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는 도약의 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ction point  

내가 일하는 조직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치는 어떤 것인가?

이 가치들은 내가 지지하는 가치들과 일치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의 가치와 현장의 가치를 정렬시킬 수 있을까?

Keyword: 리더, 리더와 리더십, 윈스턴 처칠, 리더십 요소, 리더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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