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은 선택이다
자연을 제외하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탁월함은 없다.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성취는 그것을 이루기로 선택한 사람들 덕분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벽화를 그릴 때 그는 최선을 넘어 극한의 경지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다. 비발디가 80이 넘어 이전에는 작곡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오페라 <팔스타프>를 만든 일은 자신이 이룩한 성취에서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모든 발견과 발명에서 탁월함은 선택이고 지향점이었다. 탁월함은 가장 먼저 탁월함을 목표로 삼는 선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탁월하지는 않고 탁월한 성취를 달성한 사람은 소수다. 이 사실을 재능과 자원이 많고 적다는 이유로 설명한다면, 이는 빈곤한 설명이다. 목표를 선택할 때 재능과 자원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최소한의 재능과 자원은 필요하다. 어떤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능력과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능과 자원은 고체처럼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획득할 수 있고 또한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능은 사람이 보유한 자원이다. 사람은 정신과 육체가 성장하는 존재이고 어떻게 정신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재능은 성장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성인으로 성장한 과정을 돌이켜 보면 배우고 단련하며 성장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탁월함을 목표로 선택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
또한 탁월함은 자신과 삶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이다. 열망을 실현한 것이 곧 탁월한 성취이고 삶이다. 삶에 대해 그리고 일에 대해 사람은 큰 성취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탁월함을 열망하지 않고 삶과 일의 목표로 선택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들에게는 야심이 없다. 야심이 작다. 무엇인가 보다 원대한 삶과 일에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 그런 것일까?
탁월함에 대해 야심을 갖지 않는 이유
내가 탁월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선택한 일은 40대가 넘은 나이에 발생했다. 그 이전까지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위치, 조금 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일하고 삶을 꾸려왔다. 물론 나도 어린 시절에 엄청 많은 위인전을 읽었고 대통령이나 사회복지가, 언론인을 꿈꾸면서 높은 지위에서 세상에 큰 사람으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기는 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복기해 보았다. 나는 왜 탁월함을 인생의 가치로 생각하지 못했는지를 돌아보았다.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울대에 입학했고 대기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하는 중간에 대학원도 졸업했다. 부에 대한 욕심은 크지 않았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크게 힘들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큰 재산을 욕심내지는 않았다. 공부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크지 않았다. 대학 졸업 시점에 유학을 생각했지만 바로 접었고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그리고 일하고 적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가,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를 알게 되었고 그의 삶과 성취를 통해 탁월함을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드러커는 작가, 교수,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미친 삶을 살았다. 유럽의 소국이었던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청년기에 고국을 떠나 방랑하는 삶을 시작했지만, 현대 경영학의 이론체계를 세우고 기업과 비영리조직을 포함한 많은 조직을 이끈 리더들에게 영감과 지혜를 전달했다. 학자였지만 사상가였고, 현실 경영 실무에 폭넓은 영향을 미침으로써 많은 조직의 발전을 통해 사회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다차원의 영역에서 그는 공헌했다.
직업인으로, 시민으로 살아 온 나는 자기 몫의 삶에 치중했다. 그리고 그 몫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에 대한 성찰보다는 주어진 기회를 따라 적응하는 삶에 가까웠다. 내 삶을 통해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왜 나는 일과 성취에 대해 보다 큰 목표를 가지지 않았을까? 내게 주어진 삶의 영역, 주어질 수 있는 영역에서만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했을까?
나는 인생에서 탁월함을 향한 꿈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드러커를 통해서 발견했다. 삶과 일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는 스스로 발견해야 하지만 많은 경우 앞서 살아간 사람에게서 배우기도 한다.
내게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 보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은 생활을 꾸리느라 바빴고, 친척 어른들도 없었다. 늘 나는 혼자 생각했고, 높은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는 삶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달성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데까지 노력하면서 성장한 듯싶다.
자신의 삶에 야심을 갖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살아온 삶의 여정에 있다. 가장 높은 야심이 무엇이며 야심을 갖는 의미를 배우기도 전에 삶에 적응했고, 뒤늦게 그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삶과 일에서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 지금까지 쌓아 온 삶에 위험을 준다는 것을 이미 아는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와 가치는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이 말은 맞다. 그러나 이를 고민하도록 자극하는 배움의 기회가 삶에서는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찍 올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늦게야 온다. 탁월한 삶을 추구하는 의미를 생각해보라고 말하거나, 혹은 그런 삶을 보여 준 사람이 있었다면 좀 더 일찍 그런 삶에 대해 자각하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두 번쨰 이유는 자신에 대한 신뢰, 곧 자부심에 있다. 꿈은 상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상상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의지와 의욕으로 이어진다. 우리 모두에게는 좀 더 좋은 삶에 대한 본능이 있다. 그래서 꿈을 꾸고 의지를 갖는다. 그런데 의지와 의욕은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닌 듯싶다.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삶의 현실이 만만치 않다면, 자신이 갈 수 있는 데가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하게 되고 의지를 잃게 될 수 있다.
의지를 잃게 되는 혹은 의지를 갖게 되는 원천은 자부심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의 꿈에 대한 믿음,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원천은 자부심이다. 자부심은 매우 정직한 자기에 대한 신뢰다. 그래서 억지로 자부심을 가질 수는 없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우리 본성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성취밖에 하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가 탁월한 존재이고 탁월한 성취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곧바로 가질 수는 없다. 더구나 평범한 노력으로는 성취하기 어려운 탁월함을 목표로 앞에 두고서도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성취보다 훨씬 어려운 성취라는 인식은 자부심과 양립하기 어렵다.
정리하면, 젊은 내가 탁월함을 삶과 일의 목표로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탁월한 삶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고 발견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고, 내가 탁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자부심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탁월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어떻게 나는 탁월함을 목표로,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게 되었는가?
그것은 내가 탁월함을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를 돌아보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탁월함에 대해 내가 부여하는 중요성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 일과 삶의 우선순위,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지금 탁월함을 추구하고 있는가? 혹시 탁월함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왜 탁월함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꼭 나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온 여정이 다르기 때문이고 목적과 가치,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그랬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럴 때만 탁월함을 선택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탁월함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평범함에의 유혹을 물리치고 탁월함을 목표로 선택하는 과정을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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