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생각법
테레자 보이어라인, 샤이 투발리 저 | 새로운현재 | 2016년 02월 18일 |
원제 : Denken wie Einstein
분야 구분: 인문, 자기 계발, 철학
평점: 4/5
5: 두고두고 읽어야 하는 책/ 생각을 바꾸는 책
4: 두 번 이상 읽어야 하는 책 ' 생각에 강한 자극을 주는 책
3: 읽어두면 좋은 책. 어느 정도는 교양을 보태 줌
2: 즐거움을 주는 책. 1: 시간 낭비.
2016.6월 1차독서, 2017.3.17 2차 독서
개요
탁월한 천재들의 내면, 특히 사고 과정을 설명한 책- 7명의 천재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업적이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한다. 7명의 인물은 다음과 같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리디리히 니체
바버라 매클린톡
지그문트 프로이트
레오나르도 다빈치
소크라테스
한나 아렌트
찰스 다윈
조르다노 부르노
이번 글은 여섯 번째로 <소크라테스>에 관한 내용이다.
소크라테스
직접적 생각법
Jay) 직접적 사고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한다는 의미와 사물의 외형이나 가려진 모습을 벗겨 진정한 실체를 이해하려는 사고를 의미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사물에 대한 개념으로 사물을 정의하고 이해한다. 그런데 내가 가진 개념은 올바른 것인가? 그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직접적 사고는 자신이 생각하는 개념에 대해 최선을 다해 회의하고 따져보는 태도이다. 예를 들어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에 대해 가진 개념이 올바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런 치열한 사고는 현학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개념은 판단을 이끌고 올바른 행위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대로 “지혜의 시작은 개념 정의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정으로 모른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결국 알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인용문이 다소 많은데, 진리를 탐구하는 소크라테스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포함했다)
소크라테스) 진리의 철학자로 대표되는 소크라테스는 진리 자체보다는 진리를 탐구하는 철저한 사고를 온 몸으로 보여 준 인물이다: 무지에 대한 태도, 산파술로 비유되는 진리탐구 절차, 자신의 생각으로 검증하지 않은 진리의 부정, 사물의 진정한 실체에 대한 이해가 진리라는 인식 등.
글을 남기지 않은 철학자: 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림 역시 살아 있는 것처럼 거기 있지만, 당신이 그것에게 뭔가를 질문하면 그것은 아주 고상하게 침묵하기 때문이다.” 플라톤 대화편 <파이드로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플라트소크(소크라테스 평전을 쓴 폴 존슨의 표현)…… 진짜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무엇인가? 플라톤의 초기작만 그의 생각인가? 이데아론은 플라톤의 생각 아닐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모순적이었다: 입장 변환. 인간이 지혜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다가 명확한 견해를 제시하기도 함.
회의적인 합리주의자이자 도덕주의자, 논리적 사상가, 종교적 인물? 소크라테스는 현대인이 상상하는 그런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 과학, 서사, 신비주의가 혼합되고 함께 온전한 그림을 만든 르네상스 풍 인물.
센더슨 백, <공자와 소크라테스 Confucius and Socrates>
“소크라테스는 …… 확실히 수많은 주제를 가르치고 토론했다. 거의 매일 몇 시간씩, 적어도 25년 동안, 어쩌면 40년 이상을, 그가 자신의 이념을 거의 혹은 전혀 직접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서 끄집어내고자 한 것만 보더라도, 그가 수많은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고유한 지성과 가치체계를 추구했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와의 만남에서 실제로 매우 다양한 철학을 가져갔다. “
지혜의 산파:
아테네 아고라(광장)에서 철학을 한 사람. 맨 발로 이곳을 돌아다니며 소음과 더위 속에서 아테네 주민들에게 질문을 던져 그들을 일상의 관성에서 끄집어냈다. “놀랍도록 예측불가였다”(역사가 베티니 휴즈).
“지혜와 권력으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도시 아테네의 시민이여, 자네는 …… 깨달음과 지혜 그리고 영혼의 평안을 돌보지 않고 돈에 신경을 쓰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가?”
크세노폰에게 “용감하고 도덕적인 남자는 어떻게 생겼소?”
*고결하지만 굼뜬 말을 성가시게 하는 말파리. 성가신 인물.
키케로
“그는 철학을 높은 세계에서 끌어내려 도시에 머물게 했고, 각 가정으로 인도했으며, 철학의 필요성을 확립했고, 인간의 삶, 관습, 선과 악 같은 것들을 연구했던 최초의 인물이다. “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집단 vs.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집단(소크라테스)
-미리 정해진 이념에는 무관심. 자신의 견해를 포함한 모든 것을 의심하고 탐구함. 자신을 사람이 고유한 지혜를 출산하도록 돕는 산파로 여겨 ‘산파술’이라는 문답법으로 대화함.
-정의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한 수 배우고자 한다 > 질문과 질문 > 상대방의 지식이 사실은 유사지식임을 드러냄 > 상대방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게 됨.
*사람들이 ‘확신하는 사고’를 버리고 직접적 사고를 하도록 이끌고자 한 것임.
ex) 정의란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함 > 어떤 것이 정의롭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누가 그것을 가르쳐 주었는가? : 사람은 의미를 직접 통찰하고 정의하지 않은 채로 어떤 개념을 사용한다. 실제보다 더 많이 안다고 주장할 때마다 확신하는 사고가 작동한다. 직접적 사고는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겨질 수 없음을 안다.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을 의심할 수 있고 의심해야 한다는 견해를 기초로 한다. 직접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게서 넘겨 밭은 생각의 모호한 잡동사니 더미에 묻혀 산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원래는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없다”라는 신탁을 델피 신전에서 듣는 아테네 시민 카이레폰.
“신은 무슨 뜻으로 그런 신탁을 내렸을까? 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내가 지혜로운 자가 아님을 아주 잘 알고 있는데……”라며 소크라테스는 놀란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알려진 한 정치인과의 대화. “나는 그보다 더 지혜로운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적어도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무지: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고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뜻.
-전문지식은 지혜가 아님(신발 제작자-샌들, 연설가-수사학 등). 지혜는 확정되지도 기록될 수도 없으며 암기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님. 지혜는 정신이 갑자기 확장되면서 통찰의 자리가 만들어지는 순간에 생김. 이 순간은 언제나 금세 사라진다. ‘사랑’에 대해 오늘 이해한 것을 내일 다시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기록을 남기지 않은 이유)
-무지는 지혜보다 한 수 위.
플라톤의 대화편 <알키비아데스 1>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부유한 귀족 출신으로 스무 살이 채 안 된, 잘생기고 교만하고 착각에 빠진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이 정치적 재능을 타고났고 그래서 전쟁과 평화의 결정에 자신이 참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치적 출세를 위해 연설가로서 대중 앞에 서고자 했다. 소크라테스는 아이러니, 논리, 순진한 질문으로 그를 파헤쳤다 “자네가 민회에 조언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의술에 대해 아니면 조선기술에 대해 조언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기술이라면 그 분야의 전문가인 의사나 조선기술자가 더 적합할 터였다.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이 나랏일을 할 자격이 될 만한 어떤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불의를 설명해 달라고 청했다. 알키비아데스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실토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숙고하지 않은 채 그냥 이런 개념들을 사용했고, 누구에게서도 정의와 불의를 배운 적이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끈질긴 질문으로 알키비아데스는 모순적인 개념 정의를 반복했고, 나중에는 혼란에 빠졌다. “맙소사, 오, 소크라테스, 내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 순간에 알키비아데스는 ‘아포리아 aporia(그리스어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막다른 골목이라는 뜻)을 경험했다. 아포리아는 직접적 사고의 핵심 요소로,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생각건물이 벽돌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무너지고 먼지 탓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이때 비로소 생각이라는 것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신하는 사고는 화려한 정면을 보여 주지만 그 뒤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상상과 모순된 정보로 지어진 건물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 건물이 무너져야 독립적이고 창의적이고 연구하는 사고의 길이 열린다. 대화가 끝날 때 알키비아데스는 모든 것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소크라테스 앞에 섰다.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가르치고자 했던 요점이다.
소크라테스) 다른 사람을 통치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통치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직접적 사고를 해야 한다. 삶을 의심하고 캐물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자신의 고유한 통찰을 기반으로 할 때만 정말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노예와 다르지 않다.
습득했거나 확정된 지식은 확신하는 사고로 이어지지만 ‘무지’는 지혜의 또 다른 형식으로서 개념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생각건물의 붕괴는 직접적 사고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붕괴가 있어야 고유한 통찰을 ‘출산’할 수 있다.
지각이 영혼을 돌본다:
“직접 검증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도구는 대화였고, 어휘는 진리를 발견하는 차량이었다. 어휘의 대가.
당시 아테네는 수사학을 중시했고 직접 민주주의 도시국가에서는 설득력이 정치적 무기였다.
*소피스트: 연설의 내용보다 형식을 중요시, 조작과 은폐의 웅변술. 실재보다 많은 가상
*소크라테스: 완벽한 수사학(<파이드로스>, 열애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상반된 설득력 있는 연설.
<고르기아스> 수사학의 원래 의미를 당대 최고 수사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밝혀 냄. 완벽한 웅변술은 어휘에 진리를 담는 것이 아니라 어휘가 진리로 이끌어야 하는 것. “모든 어휘는 선입견이다”(니체)
-개념 설명은 철학의 핵심. “지혜의 시작은 개념 정의이다.” 개념을 정의하려는 노력 자체가 철학적 연구이자 직접적 사고의 과정.
* 대화는 언제나 “ OO 란 무엇인가”로 시작. 직접적 사고는 스스로 개념을 정의하려 노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견해만 전달하는 명목정의와 실질정의를 구별함. 실질정의는 대상이 ‘무엇’인지만 정의할 뿐, 그것에 대한 생각은 나타내지 않음. 진짜 정의는 어떤 대상의 본질이나 실체를 다룬다. 즉, 대상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미리 확정되었거나 전달받은 견해에서 어떤 대상을 떼어 내면, 대상 그 자체, 그것의 영혼, 그것의 실체와 직접 만나게 된다. 이 과정이 자각으로 이끈다. 모든 습득한 지식을 대화 과정에서 모두 벗어버리면, ‘벌거벗은 자아’를 통찰하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에게 진리 추구는 영혼을 보살피는 것”.
“돌아다니면서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하나, 너희 젊은이와 늙은이들에게 육체와 재산을 영혼보다 먼저 돌보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뿐이다.”
*자각을 위한 노력은 올바른 행동을 위한 유일한 전제조건: 실수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다. 제빵을 모르면서 빵을 굽는 것은 큰 비극을 낳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적 통찰 없이 도덕적 개념을 사용한다면, 이것은 재앙을 야기할 수 있다. (알키비아데스의 착각)
*문제는 부족한 지식이 아니라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전해받은 도덕적 개념은 고유한 자기 것이 될 수 없고, 자립적 통찰이 없는 것이라 쉽게 도덕과 충돌한다. 고유한 직접적 도덕관은 자립적 통찰에서 나온다. 스스로 ‘정의’를 연구하는 사람은 거기서 자신의 행동을 이끌어 낸다.
인간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믿음: 도덕을 연구하는 모든 개개인이 도달하는 결과는 보편적일까?
자신의 생각법으로 ‘선’의 보편적 원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함-이데아론의 기본 바탕.
<파이드로스와 나눈 대화>
영혼은 날개를 잃으면 신의 왕국에서 내려와 육체 안으로 들어간다 영혼이 깃든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신의 왕국에 대한 무의식적인 기억을 갖는다. 진, 선, 미, ‘참된 존재’를 기억한다. 인간이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서 진, 선, 미를 본다면, 이 순간 그는 그 사물이나 사람의 원래 모습인 이데아를 기억하는 것이다. 선한 사람에게 ‘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선 그 자체가 그 사람을 통해 관찰자에게 반사된다. “그러나 그것은 한 때 우리의 영혼이 신과 거닐 때 보았던 신의 왕국에 대한 기억이다.”
*대상에 대한 정보를 빼고 대상을 이해하는 다른 가능성: 대상을 정말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의 본질을 직접 만나야 한다. 직접적 사고는 어떤 대상의 ‘이데아’를 통찰하게 한다. (일몰을 볼 때: (일몰 같은) 아름다움, (철학 같은) 진리, (연애 같은) 사랑은 이데아 왕국에 있는 아름다움. 진리, 사랑의 본질을 상기시키는 이 세상의 형식. 일몰을 보거나 애인에게서 사랑을 느끼면,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나 사랑의 이데아와 자신을 연결한다. 이런 식으로 직접적 사고는 상황, 표면적 형식뿐만 아니라 가장 깊이 있는 본질을 통찰한다.
<직접적 사고의 3단계> 가치관, 선입견에서 벗어나 자율지성을 만난다.
1.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가짜 지식 깨닫기
2. 자신의 무지 깨닫기
3. 어떤 대상의 이데아를 직접 만나기
거짓 안정과 가짜 안정:
인간의 자기 과신 경향: 과신 오류 overconfidence effect. 자신의 예상이나 기대를 과신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다양한 실험들. 자신의 지성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밝혀냄.
<2011, 도미니크 존슨과 제임스 파울러의 연구>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태도는 특정 조건에서 경쟁에 유리함. 자신감, 실제로 성공(오만한 사업가 등). 국가도 자신을 과대평가한다(2003년 이라크 전쟁, 2008년 경제위기 등) *과신 오류는 모든 인지왜곡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
*안정에 대한 본능적 욕구- 안정 욕구는 생존 욕구. 아무것도 모르느니 차라리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싶어 한다. 인간은 대부분 그냥 확신한다. 왜라고 의심하는 순간 혼란과 불안을 느끼기 때문.
-확신하는 사고의 문제: 안정을 주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불안정한 것. 확신이 흔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두려움). 그러나 살아가면서 지식의 모순과 근거가 약하다는 것을 발견한다(불편한 깨달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과신 오류에 빠지고 정보가 ‘진리’라고 믿는다. 전문가를 지나치게 신뢰한다.
교훈:
삶의 모든 물음에 답하는 지식은 없다: 본질적 물음에 대한 답은 스스로 직접 통찰해야 한다.
-혼란과 무지를 견딘다: 용기가 필요한 이유(소크라테스- 혼란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만 두려움을 준다. 혼란은 통찰로 가는 필수과정).
-과대평가는 안정에 대해 꿈만 꾸지만 직접적 사고는 안정을 마련해준다. 확신은 안정을 가져오지 않는 경직된 것. 확신은 언제든지 흔들리기 때문.
-진짜 안정은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혼란과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확신이 무너졌을 때에도 굳건할 수 있다. 혼란과 무지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은 과거 정보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통찰의 전제 조건.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인 소크라테스: 평상시와 똑같이 보냄. 면회를 오는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눴고 난생처음으로 글을 썼다. 심지어 도시를. 탈출할 수 있었지만 거절. 죽음은 최후의 혼란이자 최후의 무지.
냉철하면서도 뜨거운 소크라테스:
그와의 대화는 서정적이고 감성적. 대화 상대자의 내면에 설명하기 힘든 열정의 불을 지핌.
“그의 얘기를 들으면, 심장이 크게 뛰고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내가 알기로,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다. “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대화를 통해 계속해서 지혜를 농락하고 구애하고 시적 언어로 고쳐 쓰는 그는 누구인가?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 단 ‘philia’의 뜻인 ‘사랑, 호감’은 친구 사이의 사랑이다. 소크라테스와 지혜는 단순한 친구관계 그 이상이었다.
플라톤의 <향연>
모든 귀족 남자들이 향연에 참석하여, 이날은 술을 마시지 말고 에로스에 대해 돌아가면서 연설을 하기로 합의. 에로스는 욕정에 불타고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석처럼 이끌리게 되는 육체적 사랑을 뜻한다. 소크라테스의 연설: 사랑이 무엇인가 가르쳐 준 스승인 디오티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청중을 탄복시킨다(무녀 디오티마에 따르면 에로스는 무한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유한한 존재의 욕구다. 보통 사람들은 욕정에 이끌려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낳음으로써 무한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높은 형식이 있다. “이를테면 영혼에 다가와 영혼의 자식을 낳고 계속 이어서 영혼의 후손을 잇는, 육체보다 더 생식력이 좋은 것이 있다. 영혼에 다가와 영혼의 후손을 잇게 하는 그것은 도대체 뭘까? 바로 지혜와 도덕이다.” 에로스를 지혜로 이끈다. 지혜에 접근하여 개별 대상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보편적 원리로 확장한다.
아름다움의 철학적 통찰:
철학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원리(혹은 이데아)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주변을 둘러봄으로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포괄적이고 높은 아름다움의 대상을 발견한다. 처음엔 육체의 아름다움을, 그다음엔 미덕과 행동의 아름다움과 철학적 통찰의 정신적 아름다움을 본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움 그 ‘자체’를 만난다. 디오티마에 따르면 근원적 이데아와 하나가 되는 이런 정신적 경험이야말로 육체적 사랑이 충족시킬 수 있는 최고 목표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모든 아름다운 육체로, 아름다운 육체에서 아름다운 노력으로, 아름다운 노력에서 아름다운 통찰로, 모든 통찰의 종착역인 근원적 아름다움의 통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직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통찰할 때까지” 육체적 사랑, 에로스는 인간과 신(이데아의 왕국) 사이의 중개자다.
: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애인이었고 에로틱한 사상가. (p.197) 대화는 통찰을 잉태시키는 성교와 같았다. 대화 상대자와의 직접적 만남, 직접적 통찰이 이루어지는 만남. 직접적 만남, 이런 ‘하나 되기’는 직접적 사고의 에로틱한 특징이다.
: 소크라테스는 특별한 방식으로 평생 동안 사랑에 빠져 살았다.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무지로 돌려놓고, 세계를 항상 처음처럼 만났고, 가장 내밀하고 미세한 층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과 대상의 거리를 좁히려는 갈망을 느꼈다.
*도덕적 결정의 순간에 친구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각자 다르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 정보와 선입견을 버리고 머리를 완전히 비우고 문제를 새롭게 관찰한다. 관찰만 하고 모른다는 사실에 저항하지 않는다. 안개가 있지만 곧 걷히고 갑자기 새롭고 직접적인 통찰을 하게 된다. 물자체와 직접 접촉하는 거의 감각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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