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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탁월함에 대한 생각

탁월함을찾아서(1)인간은 어떻게 탁월함을 성취하는가

by 문정엽/드러커연구가 2017.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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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런을 방어하라

 

노화(aging)는 육체적 사건만이 아니다. 며칠 전 TV에서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생소하게 들릴까?

 

이 프로그램은 작가 유시민을 비롯한 몇몇 지식인들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주제로 지적인 잡담을 하는 내용인데, 이 날 대화 중에는 인간의 두뇌 속에 있는 뉴런이 매일 10만여 개씩 소멸된다는 정재승 박사의 얘기가 있었다. 덧붙여 그는 이것도 일종의  노화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노화는 분명히 육체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곧바로 정신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뉴런의 소멸은 사고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정신도 늙어지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기가 힘든 것, 혹은 노인들의 고정관념 혹은 고집에는 분명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자연계를 지배하는 생명의 원리, 즉 태어나서 성장하고 소멸하는 이치를 인간이라고 거역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노화를 늦출 수는 없을까?  인간적인 관심이고 당연한 욕구다. 고령화 사회로 질주하고 있는 현대에서 앤티 에이징(ANTI-AGING)은 이미 상당한 규모를 가진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나는 정신능력의 노화를 방어하는 것에 관심이 간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경험하는 것이 정신의 노화를 늦추는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프로에서 출연자들이 자유자재로 주제를 바꾸면서 대화하는 과정을 보노라면, 나이를 뛰어넘는 생각의 힘과 범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작가나 예술가들이 노년기에도 위대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항노화에 대한 분명한 증거다. 오페라 팔스타프를 창작한 베르디는 이 작품을 80세가 넘어서 창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경영학을 창시한 피터 드러커는 60세가 넘어서도 열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고 90세가 넘어서까지 강의를 했다. 또한 최근에 발간된 <마케팅 4.0>의 저자인 필립 코틀러는 1931년 생이다. 80세가 넘었지만 코틀러는 마케팅의 아버지라고 존경을 받고 있다. 이들이 가진 공통점은 나이에 무관하게 지적 작업을 계속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책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라는 질문에 드러커는 '다음 책'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데, 단지 많이 생각하는 것이 정신에 활력을 주지는 않는다. 몸을 움직인다고 해서 근력과 지구력이 좋아진 지 않는 이치와 같다. 내 경험으로는 보다 넓고 보다 깊은 탐구, 즉 보다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탐구가 정신을 젊게 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은 정신으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근본적인 질문은 현재의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고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왜 세계는 이렇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은 과학계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의 하나인데, 이 질문이 수많은 과학법칙을 발견하는 노력을 낳았고,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끈 힘이었다. 

 

탁월함에 대한 의문

 

최근 들어 나에게는 하나의 질문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깊이 생각해야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 인간이 탁월함을 성취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왜 이 질문이 궁금해진 것인지, 그 시초는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피터 드러커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면서, 한 사람의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넓고 깊게 사유하고, 그것을 책과 강의와 대화를 통해 남겼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쌓여온 것 같다. 드러커가 사망한 2005년 이래로 지금까지도 드러커가 남긴 사상적 유산과 그 의미를 탐구하는 많은 사람들로 볼 때, 드러커의 삶과 유산은 탁월함의 사례로 충분하다. 

 

인간은 어떻게 탁월한 성취를 하는 것일까? 천재가 감춘 비밀을 찾고 싶은 궁금증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함을 뛰어넘는 맥락에 대해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넘어서는 경험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 독립성과 상호의존의 패러독스다. 먼저 사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독립적으로 살기를 권장(?)하고, 독립성과 함께 삶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책임감을 요구한다. 평범한 자질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계발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삶에서 성취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불행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동시에 사회는 사람들에게 상호 의존할 것을 요구한다. 서로 협력하고 협력을 통해 개개인이 달성하기는 어려운 성과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상호의존이 분명하게 요구되는 곳은 조직이다. 현대 사회는 조직사회라는 것은 이 상호의존의 요구가 얼마나 보편적이며 중요한 가를 말해 준다. 기업은 기업답게, 학교는 학교답게, 병원은 병원답게 성과를 창출하기를 사회는 필요로 한다. 각 조직이 창출하는 성과는 사회가 돌아가고 풍요롭게 발전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조직은 어떻게 성과를 만드는가? 조직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힘을 합쳐 그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만일 상호의존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조직은 조직으로서 성과를 만들지 못하거나 부실한 결과만을 산출하게 되고, 사회는 고통을 겪는다. 오늘날의 대학은 이러한 상황에 가장 근접해 있는 조직이다. 두 명의 대학생 자녀를 둔 사람으로서 할 얘기는 아니지만.  

 

독립성과 상호의존의 패러독스는 모든 사람이 평범함을 뛰어넘을 것을 요구한다.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면서, 동시에 각 개인의 강점을 합쳐 사회를 위해 가치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내가 위대한 성취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다. 물론, 사회는 천재나 비범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식사회인 현대 사회는 개인으로서의 기여와 성취를 더한층 필요로 한다. 평범함을 넘어서는 탁월함은 지식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자,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인간은 평범하게 태어난다. 그러나 평범한 삶을 넘어 탁월한 성취, 곧 위대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 자신을 비롯해서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을 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길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탁월한 성취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탁월한 성취는 먼저 그 성취가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에 있다. 좋은 영향력을 뜻한다. 탁월함과 평범함을 나누는 기준은 그 규모나 어려움의 정도가 아니라 그 성취가 과연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것이냐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는 피라미드라는 위대한 건축물이 있다. 몇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대단한 건축물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피라미드가 위대한 성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피라미드는 왕을 위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인간의 노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당시의 첨단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의 성취로서 빛나는 것이지만, 결코 탁월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시대의 왕이 얼마나 권력이 큰 사람이었는가라는 씁쓸한 비평으로 끝난다. 

 

 

두 번째 기준은 지속성이다. 위대한 성취가 얼마나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대표적인 성취로 <다윈의 진화론>이 있다. 에지(EDGE/ https://www.edge.org/)라고 하는 전문가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은 매년 전 세계의 저명한 지식인과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변을 모아서 발표한다. 질문의 참신함과 답변의 창의성과 깊이가 유명하다. 2012년의 질문은  "가장 깊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설명은 무엇인가(WHAT IS YOUR FAVORITE DEEP, ELEGANT, OR BEAUTIFUL EXPLANATION?)"이었는데, 이때 다윈의 진화론은 가장 많은 과학자들이 뽑은 아이디어로 뽑혔다. 

 

진화론은 생각의 토대를 바꾼 혁명적 아이디어다. 신의 눈으로, 신의 마음으로 세계와 인간 존재를 설명하던 사고는 진화론으로 인해 토대를 상실했다. 단지 종교의 가치, 종교의 근거가 진화론으로 인해 흔들렸다는 뜻이 아니다. 사고의 혁신으로 인간을 이끈 것이다. 

 

진화론이 혁명적인 이유는, 인간에게 어떠한 절대적 근거도 없다는 선언에 있다. 진화론이 등장하기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있던 종교나 유사한 믿음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절대적인 존재로부터 온 것이라는 근거를 제공했는데, 이 근거가 그냥 사라졌다. 이제, 인간은 절대적 존재의 그림자로 숨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인간 존재를 포함해서 세계는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다. 유일한 근거도 없고,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법칙 같은 것도 없다. 인간과 세계는 그냥 만들어졌다. 이 주장이 함의하는 바는 놀랍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에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로 삶을 펼쳐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을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 

 

모든 인간에게 행복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지속성은 내가 생각하는 탁월함의 본질이고 속성이다. 인간의 삶은 이러한 탁월함이 창조하고 만들어 왔다.  나는 문학작품, 그림, 음악, 과학적 발견과 발명, 혁신적 사상에서 이러한 탁월함을 발견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탁월함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점이 많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복잡해지는 현대에서 과거와 같이 모든 방면에 뛰어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함을 이루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사회가 제기하는 기회와 문제는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위대한 인물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인간으로서 동일한 존재이고 탁월한 성취를 이뤄 나가는 행동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탁월함에 대한 인식과 방향감각, 자신이 공헌할 영역의 발견, 자신이 남겨야 할 유산에 대한 인식이다. 

 

이  생각은 사실 문득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른 생각이다. 그래서 이론이 아니라 직관에 가깝다. 위대한 인물, 탁월한 성취에 대한 나만의  이해와 경험이라는 재료가 문득 합쳐져서 직관적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 이유로 탁월함의 전경이 아니라 스냅사진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탁월한 성취에 대해 중요한 핵심을 말해 주고 있다.  

이를 프레임으로 삼아 좀 더 깊게 탁월함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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